용성문중 선맥

대종사 소개

용성 진종 대종사 (龍城 震鐘 大宗師 : 1864~1940)

출가송(出家頌)
  • 不忘前世事 불망전세사전세사 잊지 아니하라고
  • 夢中佛授記 몽중불수기꿈가운데 부처님이 수기하셨도다.
  • 出嫁德密庵 출가덕밀암덕밀암에 출가하니
  • 其佛親見佛 기불친견불그 부처가 꿈에 본 부처더라.
견도송(見道頌)
  • 五蘊山中尋牛客 오온산중심우객오온산중에 소를 찾는 나그네가
  • 獨座虛堂一輪孤 독좌허당일륜고텅 빈 집에 홀로 앉으니 하나의 둥근 달이라
  • 方圓長短誰是道 방원장단수시도방원장단을 누가 이르겠는고
  • 一團火炎燒大天 일단화염소대천한 덩어리의 불길이 대천세계를 태우는구나
오도송(悟道頌)
  • 金烏千秋月 금오천추월금오산에 천년의 달이요
  • 洛東萬里波 낙동만리파낙동강에 만 리의 파도로다.
  • 魚舟下處去 어주하처거고기 잡는 배가 어느 곳으로 갔는고
  • 依舊宿蘆花 의구숙로화옛에 의지하여 갈대 꽃밭에서 잠잔다.
열반송(涅槃頌)
  • 諸行之無常 제행지무상모든행이 떳떳함이 없고
  • 萬法之俱寂 만법지구적만법이 고요하도다
  • 匏花穿籬出 포화천리출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가니
  • 閑臥麻田上 한와마전상삼밭위에 한가로이 누웠도다.
  • 七七年間遊幻t海 칠칠년간유환해칠십칠 년 꿈같은 삶을 거닐다
  • 今朝脫骰汲初源 금조탈투급초원오늘에야 고향가네
  • 廊然空寂元無物 낭연공적원무물본시부터 없는 자리에
  • 何有菩提生死根 하유보제생사근보리생사가 어찌 있을손가.

용성대종사께서는 1864년 5월 8일 전라도 남원군(현재 장수군) 하번암면 죽림리 에서 수원 백씨(白氏)로 탄생하였다. 7세에 한학을 익혔으며, 9세에는 시를 짓기도 하였다. 16세에 해인사에서 출가하였으며, 23세에 깨달음을 얻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선사는 산중 수행을 정리하고 1911년 48세 되던 해에 백제불교 초전법륜성지인 서울 서초동 우면산 대성사에 오신 이후, 종로구 봉익동에 민가를 구입해서 수리 개조하여 대각사(大覺寺)의 간판을 내걸로 불교중흥과 민족중흥을 발원하여 불교계의 혁신작업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에는 만해 한용운스님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중 불교대표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4번째 서명하였으며, 이로 인해 서대문 감옥에서 3년간 영어의 생활을 하였다.

1921년 출옥과 더불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하여 한문으로되어 있던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였으며, 1922년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에 간 독립군들을 돕기 위해 만주 연길 명월촌과 봉년촌에 대규모의 대각교당(大覺敎堂)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24년 61세 되던 해에는 평소의 수행력에 의해 치아에서 치사리(齒舍利)가 나왔으며 62세에는 도봉산 망월사에서 만일참선결사회(萬日參禪結社會)를 조직하여 수행에도 전력을 하였다. 1926년에는 민족정신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던 왜색골교위 폐단을 지적하고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건백서(建白書)를 2차에 걸쳐서 제출하여 전통불교의 맥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1927년 64세 때에는 대각교의식집(大覺敎儀式集)을 발간하면서 왕생가(往生歌), 권세가(勸世歌)등 창작국악조의 창작찬불가(創作讚佛歌)를 최초로 작시, 작곡하여 이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노구에도 불구하고 대각사(大覺寺)에 일요학교를 설립하여 오르간을 손수 치기도 하였으며, 한문으로 된 불교의식을 한글화하여 불공, 제사 등을 지내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많은 노래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2곡만이 악보까지 남아있으며, 그 외에는 가사만 전하고 있다. 대종사께서는 우리나라에서 찬불가의 창사자일뿐만 아니라, 국악조의 창작국악으로 된 창작찬불가를 남겼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같은해 함양에 화과원(華果院)을 만들어 사원경제의 자립을 부르짖는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주창하기도 하였다.

이후 30여가지의 경전을 번역하였으며, 30여가지의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1940년 2월 24일 대각사에서 입적하니 세수는 77세이고, 법랍은 61세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수한 전등(傳燈)68代 의 조사(祖師)인 동시에 근세 중흥율(中興律)의 6조(祖)이다.
1941년에 만해 한용운스님이 찬(撰)한 비를 해인사에 건립하였으며, 1962년 3월 1일에는 국가공로상(國家功勞賞)이 추서 되었고, 그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제자들을 1969년 9월 11일에 재단법인 대각회(大覺會)를 인가 받았다. 1990년 10월 9일에는 한글학회로부터 감사패를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銀冠文化勳章)을 추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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