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께서는 1899년 10월5일에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산동하 어의동에서 파평윤씨가문(坡平尹氏家門)에 탄생하셨다.
부친은 연담거사(蓮潭居士) 윤성장(尹性藏)이시고 모친은 하동정씨 만행심(萬行心)이셨다.
어릴 때 이름을 지호(志豪)라 하였고, 동리의 학당에서 한학(漢學)을 배워 마치셨다. 1917년 17세가 되시던 해에 가야산 해인사에 입산 출가, 당대의 선지식(善知識)이신 김제산화상(金齊山和尙)을 은사로 방한암율사(方漢岩律師)를 계사(戒師)로 득도수계(得度受戒)하여 상언(詳彦) 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일대시교(一代時敎)의 교학을 이수하신 후에 제방의 여러 선지식을 친견하며 수행정진 하셨다. 그 당시 오대산 방한암율사, 금강산 마하연
설석우화상, 덕숭산 정혜사 만공선사 등의 회하(會下)에서 수행정진 하셨으며 안도석왕사 내원선원에서 신혜월선사를 모시고 지내면서 크게
심요(心要)를 얻으셨다.
이로부터 선기(禪機)를 드날리며 정진하시더니 지리산 용성선사를 친견하시고 선사의 “반야(般若)의 공리(空理)는 정안(正眼)으로 봄이라.”는
말씀에 깨침이 있어 거량(擧揚)하니 용성선사께서 “선재(善哉)라 만고풍월(萬古風月)이로다.” 하시고 고암당(古庵堂)이라는 법호를 내리셨다.
1944년에는 종단으로부터 드디어 【대선사】의 법계(法階)를 품수(稟受)하셨으며 이어서 1952년에는 【대종사】의 법계를 품수하셨다.
1967년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3대 종정(宗正)에 추대 되셨으며,
1970년에는 해인총림방장을 겸임하시어 천하납자를 제접 하셨다.
1972년 제4대 종정에 재임하셨고, 78년에는 제6대 종정에 다시 취임 하셨다.
1976년 이후에는 큰스님의 연세가 팔순에 가까우심에도 불구하고 고명(高明)이 해외에 까지 미치니 미국가지와 구라파 각국의 초청을 받아 동서세계를 일주하시면서 중생교화에 앞장서며 타에 모범을 보이셨다.
1988년 10월 25일, 큰스님이 세수 90을 넘기시면서 차차 기력이 쇠미(衰微)하시는 듯 하더니, 이 날은 문도(門徒)들을 돌아보시고 “조심해서 살거라 인과(因果)는 분명하니라,” 하심에 제자들이 임종게(臨終偈)를 청하니,
송왈,
伽倻山色이 方正濃하니
始知從此 天下秋로다.
露降 葉落歸根同이여
菊笑 望月照虚空이라.
伽耶山色 丹楓이 짙어졌으니
바야흐로 지금이 가을이던가
때가 되면 落葉이 뿌리로 돌아가지
九月보름 밝은 달은 허공을 비치나니
하시고, 미소지으시며 입적(入寂)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