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사

학림사 소개

참나를찾는 정신문화의 수행도량 ‘학림사오등선원’

계룡산 학림사는 3.1운동 민족대표인 용성(龍城)스님의 의식개혁 정신문화 운동을 이어가는 곳입니다.
용성스님의 법손인 조계종 원로의원 학산 대원 스님께서 일찍이 시민선원을 세워서 내외국인과 종교를 초월하여 의식을
맑히는 정신문화를 전파하는 템플스테이 사찰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학림사 오등선원은 출가 스님들이 24시간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을 이어가는 대한불교조계종의 대표적 선원이며,
2017년부터 역사적인 3년 용맹정진 결사가 진행중인 참선 수행 도량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물질문명의 병폐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전 국민, 전 인류가 의식을 맑히고 성숙시키는 정신문화가 확산되어야 맑고 향기로운 사회가 정착됩니다.
참나를 찾는 수행도량 학림사에서 영원한 행복과 평안의 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학림사 재창건의 계기

사찰을 재창건하신 학산대원 선사(禪師)는 오랜 세월을 참선수행으로 일관해오다가 86년도에 우연히 어느 할아버지가 이 곳에 예전에 절이 있었는데 참으로 좋은 터라는 말을 듣고 이곳을 탐방하여보고 감탄하여 참으로 스님들이 수행정진할 수 있는 좋은 터라고 판단하고 이곳에 다시 절을 창건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수행(修行)으로만 일관하신 스님께서는 재정적으로나 그 밖에 여러 가지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아쉬움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려 계룡산 갑사(岬寺)로 가시어 하룻밤 묵어가기고 생각하시고 갑사에 도착하셨는데 그날 저녁에 좌선정진하는 도중 비몽사몽간에 예사롭지 않은 노스님 한 분이 주장자를 짚고 나타나 다라오라고 하시어 기이하게 생각하고 노스님을 따라 나섰는데한참을 따라와서 노스님이 멈추어서 와보니 바로 그날 왔다가 아쉬움을 남기고 간 바로 그 자리였던 것이었다.

노스님께서 주장자를 짚고 사방을 돌아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이 자리에 도량을 세워 수행정진 하면 많은 (道僧)이 배출된다고 하시면서 학산대원 스님의 마음을 간파하시고 말씀하시길 “스님이 뜻이 있으시면 반드시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하셨다.
그래서 학산대원 스님이 그 노스님께 묻기를 “스님께서는 누구시옵니까.” 하니 노스님께서 “이름을 알아 무엇하겠는가.” 하시면서 “나는 지장이라 하네.” 하시고는 홀연히 눈앞에서 사라지셨다.

학산대원 스님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같은 것이었으나 생시와 다름이 없이 생생하고 불보살의 현시(現示)로 예사롭지 않게 생각하여 다시 이곳 옛 제석사 터(지금의 학림사)로 돌오와 보시고서 사찰재창건의 마음을 굳히고 땅주인을 수소문하여 땅주인을 알게되었으나 재정적으로 여의치 않아 땅을 매입하지 못하고 사찰재창건의 시주자를 물색하였다. 그러던 중 당시 제방선원에서 공부할 때 대중공양을 위해 왔던 인연 있는 불자들을 만나게 되어 그 전후사정을 말씀하셨는데 수행정진도량을 재창건 한다는 스님의 말씀에 기꺼이 시주하기로 하여 땅을 매입한 것이 그 당시에 293평이었다. 그 후에 은법사(恩法師)이신 고암성언 대종사(大宗師)를 모시고 다시 이곳을 탐방하셨는데이곳을 보신 고암상언 대종사 스님께서 탄복하여 명당 중에 명당으로 이 터는 수행도량으로는 손색이 없다고 극찬을 하시면서 이 계룡산 일대에 선수행(禪修行) 도량이 없으니 이곳에 사찰과 선원(禪院)을 다시 창건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또한 지금은 열반하신 불국사와 법주사의 조실(祖室)을 역임 하셨던 월산 선사(禪師)께서도 당시에 이곳을 탐방하시고는 사찰을 재창건할 것과 아울러 선원을 개원(開院)할 것을 부촉 하시었다.

그래서 1차적으로 학산대원 스님께서는 작은 토굴을 창건하고 은법사이신 고암상언 대종사(大宗師)를 모시고 부처님 점안식을 봉행하고 주석 하셨다.

그 다음에 정식으로 1986년도에 사찰을 재창건하고 옛 제석사의 명칭을 개칭하여 “학림사”라 이름하고 점차적으로 가람을 갖추고 드디어 1995년에는 학림사내에 선원(禪院)을 건립하여 선원이름을 오등선원이라 명명하고 사부대중이 천 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학림사 오등선원의 개원식을 거행하고 아울러 학산대원 선사를 조실로 추대하였다. 또한 2001년 일반 시민들의 정신문화를 선도할 시민선원도 건립하여 일반 불자들도 정진할 수 있게 하였다.

현재에는 학림사 경내가 약 1600여평(4.696평) 정도의 규모로서 충남지역 불교의 중요한 자리 매김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학림사(鶴林寺)는 1986년 8월 학산 대원(鶴山 大元) 대선사(大禪師)께서 창건(創建)하셨으며 오등시민선원(五燈市民禪院)은 2001년 11월 선(禪)을 대중화 생활화하기 위한 큰스님의 원력의 일환으로 개원(開院)하였다. 스님들을 위한 선원(禪院)으로는 1995년 완공한 오등선원(五燈禪院)이 있다.

학림사와 오등시민선원의 도량경관은 계룡이 날개를 펴고 승천하는 듯한 뒷산과 좌측의 장군봉.임금봉의 위엄이 조화를 이룬다. 전면의 갑하산은 학이 나래를 펴고 학림사를 향하여 날아오는 듯하고 동남간에는 연화봉이 솟아서 제석천왕이 연꽃을 바치는 형국이며 남쪽에는 문필봉이 우백호를 형성하였다. 좌측의 청룡계곡에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정량옥수가 흐르고 있고 밤중에는 별빛 총총한 무공해 청정지대로서 참선수행의 도량으로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이 선원은 대전시 유성에서 부터는 차량으로 20여분, 공주시와도 20여분 가량 소요되는 거리에 있으며 충남대학교, 과학기술운, 한밭대학교, 목원대학교, 공주대학교, 대덕연구단지. 대전정부청사, 대전시청, 세종특별지치시,3군본부, 3군대학 등이 이 범위 안에 있어서 참선의 대중화 생활화에 최적지이다.

오등시민선원(五燈市民禪院)은 연견평 약 200여평의 선원 안에 자체 숙식 및 휴식공간을 갖추고 있고 사무실 건물이 따로 있어서 시민들이 자유롭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국립공원 계룡산 내에 위치하여 계룡산의 맑은 정기 속에 (心身) 단련에도 유익한 곳이다. 현대 대전,충남은 물론 전국의 시민들이 모여서 용맹정진을 하고 있다.

학림사 창건시 설판 시주하신 이 선덕화 보살님께서 서울서 내려 오시면서 기념식수로 대추나무,호두나무 두그루의 묘목을 가져 오셔서 심었다. 세월이 흘러 80의 연세가 되어 와병 중 마지막으로 학림사를 참배하고 싶다고 하셔서 따님 두분이 부축으로학림사에 오셨다. 심으신 그 호두나무가 처음으로 호두가 세 개 달린걸 보시고 눈물을 글썽이시며 나는 늙었지만 “내가 심은 호두나무가 결실을 세 개나 거두었구나!”하시며 다시는 내려오지 못할텐데 기념으로 시를 지어 주십사 하시기에 호두나무 시를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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