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 큰스님

토요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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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8 대원스님 소참법문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6-26 조회수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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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은 너무나 갇혀있어서 활발자재한 게 없고, 

막혀 있는 사람끼리 사는 거라서 얼굴 마주치면 벌써 어긋난다.  


이런 걸 보고 '내가 참 어지간히 공부를 안 했구나!' 알게 되는 것이다.


눈을 꿈쩍하면 그 의지를 알아차려야 되는데, 눈을 꿈쩍하고 이 뜻을 아느냐고 물으면, 

요새 공부 좀 했다는 이들이 손을 들거나 바닥을 치거나 하면서,


"바로 이것이지! 바로 이 도리다!" 

이러는 이들이 있다.


모든 걸 그와 같이 알면, 그걸 담판한(擔板漢)이고, 눈 감은 봉사라고 한다.


(※담판한(擔板漢): 판대기를 짊어진 사람. 앞만 보고 뒤를 못 봄. 전체를 못보고 편견을 가진 사람)


나는 물을 먹고 싶어서 눈을 꿈쩍했는데, 상대방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주먹을 들고, "지금 이 도리를 말하지?" 이러면 기가 차는 거 아닌가? 


이게 너는 동(東)이요, 나는 서(西)라는 거다.


이 알아차리는 것, 일상생활에서 활발자재하는 게 어렵다.


활발자재는 이사무애, 사사무애가 되어야 한다.


사사무애(事事無碍)가 되면 눈 꿈쩍하면 '저건 물 먹고 싶은 거구나' 하고 물을 갖다 준다.

부처님이 시자 선타바에게 '선타바야!' 부르기만 하면 소금이든, 

그릇이든, 물이든, 말이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번 알아차리고 가져다 준다.

실제로 깨달은 사람은 그렇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매번 주먹을 들고 "바로 이 도리다!' 라고 하면 같잖은 거다. 

그걸로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치에는 걸림이 없이 배우고 아는 것이 쉽지만, 사행(事行)에서 눈을 꿈쩍했을 때, 어떻게 알아 듣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그걸 못 알아듣고 다르게 응대하면 눈 감은 봉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난사한 진리의 법을 여러분이 단박에 해 마치면 좋은데, 

익힌 업 때문에 얼른 알아채기가 어려운 것이다.



**부처님께서 초기에 관법을 가르친 거는 근기가 안돼서 선을 못하니까, 

선을 하기 위한 기초를 닦도록 가르친 것이다.  

관법은 선이 아니다.

관법을 열심히 잘 한 이가 다시 화두선으로 들어왔다면, 

그 사람은 기초를 잘 닦았기 때문에 잘 한다.


그러나, 관법도 힘을 안들이고 되는게 아니고, 굉장히 힘을 들여서 오랜 세월을 해야 된다.

그렇게 하느니, 단박 처음부터 바로 화두선으로 들어가는게 낫지, 

뭐하러 오랜 세월을 소비할 것이 있는가?


그래서 조사스님들이 바로 해결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 

이 화두선이 최고 빠르다는 거다.

 '무엇인고?'

 '왜 똥막대기라 했는가?'

 '왜 무(無)라고 했는가?'

이것 하나만 해결하면 되니까 간단하다.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래서 육근육식이 탈진해야 되는데, 

육근육식을 끌어안고 있는 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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