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 큰스님

토요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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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7월16일 소참법문 1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7-23 조회수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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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스님: 달마스님으로부터 의발을 전수받은 지선선사와 처적선사가 받아서, 처적 선사는 무상선사에게 의발을 전수를 했습니다.

어제 무상선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어떤 깨달음이나 느낌이 있었는지 거기에 대한 것을 오늘은

털어놓고 점검하는 시간이니까 한번 말씀을 해보시지요.

 

*스님1: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육조혜능선사는

측천무후가 여러번 불러도 안 가고, 결국은 가사와

의발이라도 보내주면 좋겠다 해서 보냈고, 법회에서 지선선사에게 의발이 전달되면서 소위 최고의 권력자가 

그 의발을 전해주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역대 조사님들은 평가를 어떻게 하고 계시며

권력자가 의발을 전달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것은 저 개인적으로는 큰 허물이 될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조실 스님께서 한 말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실스님: 국가적으로 최고의 통치권자는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고, 그분의 혼자 자유의사가 아니고

육조스님에게 신하를 보내서 뜻을 여쭈었고, 육조스님이 그대로 묵인했습니다. 인정을...

그러니까 두 군데,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출세간(出世間) 차원에서도, 지선선사는 다 인정을 받았다고 봐야 됩니다

아주 잘 된 거죠. 육조스님이 만약에 아니다. 다시 의발을 가져오라 이랬더라면 갖다 드렸겠지.. 사적인 게 아니라 공적으로 지선선사는 전수를 받은 것이지.

그러면 세간(世間)에서도 인정이 되고 출세간에도 인정이 되는 겁니다.

출세간에서만 계속 그리 하면 세간에서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 그럴수도 있는데, 세간에서도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인 황제가 

육조스님의 의중을 받들어서 전수를 했다는 것이니까, 모든 면에서 공적인 것이니까 상관 없지.


*스님1: 잘 알겠습니다.

 

*대중1: 어제 스님께서 화두가 앞의 생각이 끊어지고 뒤도 생각이 끊어졌다고 하셨는데

끊어진 게 육식이 전체가 다 끊어지는 건지 그걸 한번 여쭙고 싶었습니다.


**조실스님: 중생심의 일체 경계가 다 끊어진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


*대중1: 자기 의식을 안다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겁니까, 스님?


**조실스님: 중생의 의식, 중생의 의지 일체가 다 끊어졌다. 이 말 입니다.


*대중1: 감사합니다. 그럼 안다는 것을 알기만 할 때 

그때도 화두를 물어야 되는 겁니까?


**조실스님: 안다는 것은 무엇이 안다는 거냐..이거라.

무엇이 안다는 거죠? 안다고 하는 거는 무엇이 안다는 거야? 안다는 그놈은 뭐여?


*대중1: 끊어진 자리에서 이놈, 오직 알 뿐인 그놈인 것 같습니다.


**조실스님: 끊어진 자리라고 본인이 그렇게 아는 거 그게 본래 뭐냐? 이거지.


*대중1: 거기서 한 번 더 물어야 맞습니까, 스님?


**조실스님: 그래 그놈이 뭐냐? 이거지...


*대중1: 감사합니다.


*대중2: 오등회 자덕입니다. 어제 저희들이

역대 법보기 51회 강설을 무상선사부터 들었는데요.

오늘도 이렇게 소중한 점검의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상선사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검남성도부(劍南成都府) 정천사(淨川寺)의 무상(無相)선사는 속성이 김()씨요신라의 왕족 혈통이었다.

대대로 해동의 명가문이었다. 옛날 본국에 있었을 때, 막내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결혼을 강요당하자 칼로 자기 얼굴에 생채기를 내서 흉하게 만든 뒤, 진리에 귀의하여 출가하기로 맹세하고

만중생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는 그런 서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오빠인 무상선사도 크게 발심해서 스스로 본인이 머리를 깎고 부모에게 고별 인사를 드리고

배를 타고 당나라로 건너가서 스승을 찾고 법을 물으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자주 덕순사라고 하는 절에 이르러 처적화상이 있는 곳에 가서 인사를 올리고자 청했는데, 처적스님이 나타나지 않자 

무상스님이 손가락 하나를 등불로 불을 만들어지고 처적화상에게 소신공양을 올렸는데, 그 광경을 본 처적화상이 크게 놀라서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 온 걸 알아차리고는 곁에서 2년간 머물러 살라고 허락을 해주셨고

그 뒤 청곡산에 머물다가 갑자기 덕순사로 옮기게 됐는데, 처적화상이 집안 사람인 왕경을 보내서 비밀리에 가사를 신표로 부촉하고는,

"이 가사는 달마조사가 전하신 가사다.

측천무후가 받아서 지선선사에게 전해주었고, 지선화상이 나에게 전해주셨으며, 내가 지금 무상 너에게 부촉해 주노라.』


**조실스님: 여기까지 들은 것에 대해, 여러분은 여기에서 무엇을 느꼈나요

무상선사가 이렇게 법을,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실천해 옮긴 그 행적을 여러분 들으시고

거기서 무엇을 느끼느냐 이거죠.. 이 대목에서 뭐를 느끼셨는가요?


*대중3: 저는 법보기를 듣고, 그 선사들의 행적을 들으면서, 그 시절에 그렇게 치열하게 해도 법을 얻어 듣기가 힘들었는데

저는 참 편하게, 먹을 거 다 먹고, 할 거 다 하면서도 이렇게 크게 발심을 내지 못하는 게 참 부끄러웠습니다.

 

**조실스님: 이 무상선사가 산에서 풀을 엮어서 옷을 해 입고, 먹을 게 없으면 흙을 파서 먹어가면서 이렇게 했고

또 스승을 찾아서 도를 구하겠다는 그 마음, 지극한 그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 마음이 다 하고 다 해서

하늘 땅도 움직일 정도로 그렇게 마음이 다하고 다 해서 공부를 한 그것을 이시대 공부하는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봐야 돼요.

여러분이 이런 걸 그냥 듣고 지나갈 게 아니라, 뭣하러 앉아서 이렇게 힘들게 얘기하고, 뭣하러 바쁜데 시간 내서 앉아 있습니까?

이 시대에 과연 내 자신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봐야 돼요.

 

법을 깨달아서 전수를 받는 이런 것은 어느 누구든지 차별이 없는 것인데,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공부해서 깨달으면 그분이 바로 스승인데

옛날에 지나온 모든 선사들, 선지식들이 공부해서 인가 받는 게 그냥 된 게 아니라, 생명을 바치고 다 하고 다한 것이거든요.

다 했는데 그것을 어디에다 다 했느냐~ 선지식을 찾아서 헤매고, 선지식한테 몸을 던졌다 이겁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는 가요?

아무리 오랫동안 제가 말씀을 드려도 그때뿐이고, 여러분은 그냥 듣기만 하고 지나가 버리잖아요

오늘 이시간도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자리인데 그냥 한만하게 앉아 있잖아요. 편안하게 앉아서 그냥 듣고만 있잖아요

듣고 그냥 지나가면 그만이잖아요. 그런 게 아닌데...

 

전에도 내가 말씀드렸지만,

아버지하고 아들이 짚신을 삼아서 장에 팔러 가면 아버지 짚신은 즉각 빨리 팔리는데, 아들이 만든 신은 안 팔려요

근데 거기에 대한 비법을 아버지가 가르쳐 주질 않아요. 일생을 같이 짚신을 삼는데

새끼를 꼬아서 신을 하나 만들기까지는 아버지가 전부 다 가르쳐줘요.

그런데 같이 만들었지만 장에 팔러 가면 아버지 것은 빨리 팔리고 자기 건 안 팔려요. 앞에 수족과 같은 아들에게도 마지막 비법 하나는 

바로 가르쳐 주지 않는데, 하물며 남이 먼 데 있으면서 나 짚신 삼는데 이거 뭐 어떻게 하면 되겠소?“ 하고 묻는다고 해서 그걸 말 해줄까요?

근데 그 아들은 그걸 모르는 겁니다. 어째서 아버지 건 팔리고 내 건 안 팔리나?


이런 얘길 들어도 그냥 아버지, 아들이 짚신 삼는 그 얘기만 여러분이 머릿속에 생각하지, 거기에 깊은 의지를 더 깨닫지를 못해요.

그런 말 들으면 가슴이 메어지고 뼈가 무너지는 그런 아픔을 느끼는 게 없다는거라... 정말 

여러분은 없어요...없기 때문에 안돼요...

도대체 아버지에게는 무슨 수법이 있길래, 나는 이게 안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는데, 마지막에 아버지가 임종을 맞으면서 그렇게 전수를 해 주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그게 뭐 대단한 것도 아니라..

아버지는 아무리 작은 꺼슬거리는 털 하나라도 있으면 그냥

깨끗하게 싹 완전히 제거해서 반지르하게 했는데, 아들은 그냥 만들기만 해서 들고 나간거라.

죽으면서 아버지 하는 말이 짚신을 깨끗하게 조그마한 털 하나라도 싹 깎고 다듬어서 반지리 하게 잘 만들어라.

죽을 때 마지막으로 전해주고 간 소리야 그게.

그런데 하물며 바깥에 있는 사람이 그 전수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아들은 옆에서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끝까지 했기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역대 조사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밑에 30년, 40년 일생 동안을 스승 곁을 떠나지 않고 목숨을 바친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해주고 얘기해주는 것은 누구한테도 해 줄 수 없습니다.

이 진리의 깨달음에 있어서 전수 해 주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그냥 해줄 수가 없을 뿐 아니라 되질 않아요. 안 돼요.

마지막에 거기에 대한 법을 서로 인가해서 전수해 줄 때는 어느 누구도 옆에 사람 없습니다. 다 내보냅니다

단 둘이만 거기에 대한 걸 이야기 해주지 어느 누구도 잡인이 범접을 못합니다.

역대 조사가 쭉 그렇게 내려왔어요.

무상선사도 대선지식이라고 찾아갔는데 안 만나주니까,

다른사람 같으면 뭐 좀 기다리다가 가겠지...

한달이 되든 10년이 가든 결코 나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만나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겠다, 하는 

그런 결심이 하늘 땅이 움직일 정도로 다 하고 다 했다. 그것도 안 되면 몸으로 소신공양을 올린다~ 이거라.

 

혜통선사는 왕화상(王和尙)’이라고 머리에 임금왕()’자가 쓰여 있는 분인데

그분은 지엄화상 앞에서 붉은 화로 불을 뒤집어 썼지 않았습니까? 머리에요...

지엄화상이 감동을 받아가지고, 그 사람을 살리고 법을 전수해 주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그런 거 안 하고, 그냥 손 안 대고 코 풀려고 하고 있잖아요.

내가 앉아서 공부해서 깨달으면 되겠지.. 하는데,

천만의 말씀..

저 혼자 해서 삿된 견해, 사견이나 안 들면 다행이지.

이것은 철저한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깨달음에 들어가서 전수 받을 수 있는 그런 게 될 수가 없어요

자기 혼자 절대 되는 게 아닙니다.

혼자 정진력은 길러야 되지.

정진력, 정진의 힘은 본인이 열심히 더 길러야 돼.

그러나 눈을 뜨는 것만큼은 그것은 스승이 꼭 필요합니다.

스승을 만나지 않으면 어려워요.


계현스님은 과거 비바시불 때부터 선정에만 들어앉아 있었지 깨달은 건 없어요.

스승을 만나야 되거든. 상나화수(商那和修)존자도 오랫동안 선정에 있었지만 

결국 우바국다(優婆毱多)존자를 만났기 때문에 된거고

그 존자를 만나지 못했으면 안 되는 거지요.

여러분이 나 혼자 공부하면 되지 하는데, 천만에요..

여러분이 내 말을 귀 밖으로 들으면 안 돼요.

정력의 힘은 본인이 열심히 해서 길러야 해요.

자신의 번뇌망상 이런 게 다 쉬어지고, 없어지고,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지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깨닫는 거는 문제가 달라요.

무상선사는 안 만나주니까 손가락을 소신공양을 했어요.

이것도 안 되면 또 이것 다 하겠습니다.

그러한 지극한 마음을 다하고 다했기 때문에 된다 이거에요.

역사적으로나 지금이나 스승을 불신하는 사람 치고 된 게 어디 있어요? 하나도 된 게 없어요.

참으로 여러분이 이런 점을 듣고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건 공부의 분()이 없는 사람이에요.

 

고암 큰 스님께서는 자꾸 따라다녔답니다. 용성 스님을,,,

용성 스님이 너 가자.. 오라..” 이런 게 아니고, 어디 가실 때 얼른 따라가면 다른 선지식이 저 수좌는 스님을 잘 따라다니냐고..” 

글쎄 내가 따라오라는 소리 안 해도 자꾸 따라다니네.”

왜 자꾸 곁에서 모시며 가까이 따라다닐려고 할까요, ?

 

스승한테 직접 점검을, 단련을 받아서 한 사람하고 혼자 한 사람하고는 비교할 것도 없고

그건 천지 차이라 비교를 할 수 없는 일이고요.

송광사 구산스님도 전에 내가 효봉스님이 동화사 계실 때

보니까 잠시도 곁을 안 떠나고 조석으로 틈만 있으면 옆에 가서 지극하게 해요.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신 분들이 다 방장하고 조실하고 다 했습니다.

그 이외 혼자 껄렁껄렁 돌아다니며 한 사람들, 지금 보면 대중을 위해서 모범적으로 가르칠만한 그런 선지식이 되느냐..

안 됩니다. 돌팔이지..

결국 마지막에 좋은 꼴도 보이지 못하고 그러잖아요.

 

근데 중국 천지에 많은 인물이 있는데, 이 무상선사가 우리나라 경주 사람으로서 중국에 가서 이렇게 법을 전수받았는데

더구나 부처님의 가사 의발을 전수 받았다는 이건 정말 일대 큰 사건이고 이변입니다.

이렇게 하는 게 그냥 된 게 아니고 정말 목숨을 던지고 지극히 다하고 다 한, 

그런 모습을 여러분이 어제 들었고, 여기서 이렇게 보지 않습니까?

 

깨달으면 누구든지, 보살님이 깨달았다면 그건 선지식이요.

거사님이 깨달았다 하면 거사님이 선지식이요.

또 비구스님이 깨달았다 하면 선지식이고, 비구니 스님이 깨달았다 하면 선지식이라

이유 불문하고 선지식은 하늘에서 먹는 천공을 다 갖다 바쳐도 그것으로도 모자란다. 부처님 경전에 나옵니다.

선지식을 만나는 거는 어렵다. 선지식을 만나면 목숨을 던진다 하더라도 그건 아깝지 않다.

자기를 어쨌든 깨달음에 이르게 이끌어 줄 수 있고,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고, 점검해 줄 수 있는 선지식이니까,

그분이 없으면 자기가 눈을 뜨는 건지 안 뜨는 건지, 점검 받을 곳이 없으면 되지 않아요.

그런 중요한 문제를 내가 말을 자꾸 해야 되겠습니까? 이 말을 벌써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내가 여러분한테 셀 수도 없이 말씀을 드려요.

어떻게 여러분 말씀 해 보시오.


만약에 여러분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보는 일 이런 때를 당해서 어떡합니까? 이러면 뭐라 합니까?


*스님2: 빈틈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조실스님: 빈틈이 없다고 했으니까 그럼 빈틈이 없을 때는요?

 

*스님2: 그냥 웃겠습니다.


**조실스님: 그냥 웃는다.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빈틈이 없다고 했고, 그러면 빈틈이 없을 때는 어떻냐? 하니, 웃는답니다.

그 웃는 자는 무슨 물건이오?” 이렇게 물으면 뭐라해요?


*스님2: 스님, 마음이 답답합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마음도 지금 답답하고, 스님께서 정말 깊은 자비심으로 저희들을 

이렇게 마지막 끝까지 밀어붙였는데도 시원한 말씀 한 마디 못해서 답답하고

장마 날씨도 답답하고, 비도 답답하고 다 답답합니다.


**조실스님: 그래, 거기에서 진일보를 해야 된다. 답답한데서 진일보를 해야 한다 이거지..어떻습니까?

거기서 진일보를 하면 좋습니다못 알아듣겠습니까?

거기서 알아들으면 참 좋은데...

얼굴을 서로 마주하고 보고 서로 들어 받칠 때가 어떠합니까?” 하면

청풍내 부진(淸風內不盡)이라,, 맑은 바람이 오는데 다함이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왜 말이 없죠? 왜 말이 없어요?

들으면 뭐라고 말이 있어야 될 거 아니야.. 왜 앉아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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